<쓸모인류> 저자 빈센트 리
“인생의 쓸모는 내가 만든다.”
친절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는 자기 생각에 철옹성을 둘렀다.
그의 생각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깐깐하고 까탈스러우며 다 이유가 있어야 했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오는 차이일까?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여.
그런데 그의 주변엔 온통 그의 친구들이다.
그의 팬들이다.
가회동 한옥의 문이 열린다.
이 동네 한옥은 마당이라는 개념이 박하다.
문을 열어야 안을 볼 수 있다.
그 덕에 문 안쪽의 집은 알 수가 없다.
손을 반기는 아내의 목소리 뒤로
빈센트의 모습이 보인다.
깡마른 체구에 백발. 캐주얼한 모습이
동년배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사람을 보고 나니 안이 보인다.
외투는 한옥인데 외투 안은
흡사 컬러풀한 갤러리다.
꽁지 머리 빈센트와 자못 닮았다.
단행본 <쓸모인류>. 공저인 이 책의 저자 소개에
빈센트 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 설명과 그의 말을 섞어 간략히 정리하자면,
1952년 서울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했다.
대학에서는 토목공학과를,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휴즈항공 등
몇몇 회사에서 근무했다.
휴즈항공 근무 시절 직장 동료가
사내 인종 차별을 당하자 회사에
문제 제기를 했다.
결국 소송에서는 승소했지만
조직인으로서의 삶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40대 중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2년 전 은퇴 후 한국에 들어와
아내와 가회동 한옥에 자리 잡았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에게
삶의 모토는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다
무뚝뚝함과 상냥함의 차이
한옥을 머리에 이은 집 안이 정말 예쁘다.
삶의 공간이고 생활의 흔적이 배어 있는데,
컬러며 배치가 일상과 작품 사이에서
작품에 가깝다.
빈센트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직접 내려
화이트 초콜릿을 덧입은 빵과
함께 테이블에 올린다.
이 무뚝뚝한 빈센트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어머니와 통화할 때 빼곤
한국말을 하지 않았다는 그의 설명은,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나 말의 의도까지
캐치하는 데는 부족하다.
그래서 약간 동문서답이 오가곤 한다.
다른 하나는 그의 생각이 상당히 깊다는 데 있다.
그 생각을 이끌어 내고 이해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상황을 접목하면 곧 그와 나눈 대화에
<쓸모인류>에 담긴 그의 생각을
함께 버무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은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쓸모. 이 단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우리의 접근 방식과 매우 다르다.
그는 매일 아침 브런치를 만든다.
사는 공간의 정리 정돈도 무척 잘한다.
필요한 경우 집을 직접, 그것도 뚝딱 고친다.
요리를 잘하는 혹은 즐기는 덕에
아내의 친구들은 그를 매우 좋아한다.
이런 모습이 그가 말하는 쓸모다.
부연하자면, 타인에 의해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의 쓸모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즉 타인의 입장에서 쓸모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쓸모이다.
그리고 그는 자발적으로
그 쓸모를 만들고 움직인다.
그는 말한다.
“그냥 하는 거야. 해야 할 일이 보이면
저스트 두 잇 하는 거지.
스스로 쓸모를 찾는 것,
그게 나의 삶을 응원하는
훌륭한 방법이란 걸 알고 있을 뿐이야.”
은퇴에 대한 그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은퇴라는 단어의 감정적 온도는 차갑고
느낌은 부정적이다.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은퇴가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은퇴하는 것이고,
은퇴가 없다면 영원히 은퇴를 안 하는 것이지.”
맞다. 굳이 은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직장을, 현업을 그만두는 것은 정해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다.
문제는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책감이 아닐까.
모든 물건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 있던 아내가 한옥으로 거처를 정했다는
말을 들은 그는 ‘폭탄’이라고 표현했다.
오래된 집이라 무너질 수 있고,
관리가 잘 안 되었다면 벌레가 나올 수도 있으며,
주거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존중한다.
부부 사이에는 평등이 중요하며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아내의 결정을 존중했다.
집을 고치기 전 아내에게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물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는 집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정했다.
그리고 아내의 친구들이 모이면
자신은 버틀러가 되겠다고 했다.
침실은 아주 작게 줄이고,
대신 공용 공간을 넓혔다.
그리고 자신이 요리하기 쉽게
주방의 동선에 맞춰 주방 기구를 배치했다.
언뜻 보기에는 여느 주방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지만
그의 꼼꼼함이 그 안에 모두 담겨 있다.
모든 공간은 내용물 크기에 맞게 디자인했다.
압권은 싱크대 서랍의 수납공간이다.
3단으로 나눠 5리터 쓰레기 봉투와
2리터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넣었다.
냄새 방지를 위해 스테인리스 잠금 장치로
음식물 봉투를 덮게 했다.
을지로 공구상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만들었다.
배려도 잊지 않았다.
식탁 밑 콘센트에는 아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빨간색 펜으로 누르는 곳과
콘센트 삽입 방향을 표시했다.
아내에게는 자신이 다 할 테니
디자인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믿고 맡긴 데는 그동안 살아온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 가능했다.
이미 아내의 스튜디오를 멋지게
디자인한 전력도 있지만,
아내가 남편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은가에 대한
질문의 답에서 속살을 찾을 수 있다.
“고집쟁이. 뭐든 다 아는 사람.
몰라도 아는 사람. 맡기면 다 해내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잘 해내는 사람.
그리고 그래서 더 스트레스 받아.”
음식, 직접 요리해야 중요성 이해
그는 쓸모에 의해 요리를 시작했다.
외부 음식을 먹다 보니 부작용이 생겨
간단한 요리부터 시작했단다.
그의 요리 선생님은 책과 TV 프로그램이었다.
음식에 대한 그의 고집은 대단하다.
“음식은 만들 줄 알아야 해. 느낄 줄도 알아야 해.
이 두 가지를 알면 직접 하게 되고 생각도 깊어져.
음식이야말로 정말 좋은 약이야.
그럼 좋은 음식을 찾을 줄 알게 돼.”
그의 집에 냉동고는 없다.
냉동 음식은 언제 넣어두었는지 잊기 십상이고,
결국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결코 쌓아두지 않는다.
식재료를 선택할 때 그의 꼼꼼함은
예상을 훨씬 웃돈다.
“난 시장에 가면 워치 독(감시 시스템)이 돼.
재료의 원산지 정보를 꼼꼼히 체크하고,
상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거든.
그럴수록 장사 속임수가 사라지겠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사려는 사람을 다르게 대할 거야.
결국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에게
신뢰가 쌓이는 거래가 될 수 있어.”
그가 말하는 친구는 다르다
한번은 집 근처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샀다.
까탈스러운 요구에 정육점 주인은
불평 한마디 없이 잘라 줬다.
그 재료로 요리를 해 정육점 주인에게
가져다주었다.
당신이 준 고기로 만든 요리라고.
그는 한국에 친구가 없었다.
적어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의 집에 오면 친구가 된다.
정육점 사장님이 친구가 된 것처럼,
꽃집 아저씨, 수녀님….
심지어 을지로의 단골 공구상 사장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의금을 주기도 했다.
서로 거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친구(親舊)의 한자처럼 우린
얼마나 오래된 관계인가를 따진다.
하지만 그는 관계를 중시한다.
집으로 초대하면 친구가 된다.
그게 전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인연과
어떻게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의 답변이 명품이다.
“가까워지면 피 섞인 거야.”
이웃사촌을 미덕으로 삼고 살았던 우리지만,
어깨를 마주한 한옥 동네에서도 사실
옆집 모르고 사는 경우가 다반수다.
빈센트가 나타난 후 동네 사람들은
피 섞인 친구가 되어간다.
우리가 300년을 산다면 달라질 것들
스스로 쓸모를 만들고 채워가는 그의 삶은
빈틈없게 보일 수도 있다.
깐깐함은 거리감을 만들고,
투박한 말투는 오해를 살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많은,
아니 깊은 공감을 이끈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는 울림이 크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그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마음을 홀리는 말들이 있지.
그런데 지금은 사랑, 열정, 희망 같은
단어를 꺼내는 사람이 드물어.
다들 딴 데 정신을 낭비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러나 인간은 어느 때고
저 단어들을 기억해야 해.
우리의 선택이 틀리더라도
그 단어들에 기대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장독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봄 햇살이 부드럽다.
빛을 머금은 알록달록한 흰 고무신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인간이 300년을 산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현재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달라질걸.
인생을 짧게 바라보면
짧은 일밖에 못 하는 거야.
긴 호흡을 갖고, 그에 맞춰
시간의 프레임을 바꿔봐.
긴 시간에 맞춰 천천히 나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