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통영 여행

이순신부터 전혁림까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통영

통영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여행지였다. 지금은 ‘동양의 나폴리’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사실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고장이다. 1592년 7월 8일은 통영 앞바다에서 그 유명한 ‘한산도대첩’이 벌어진 날. 지금 이 시기가 통영을 여행할 적기다.

통영까지 가려면 길이 멀다. 경남 고성에서도 아래로 더 흘러 들어간다. 지금이야 대전부터 이곳까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지만, 예전에는 크게 마음먹어야 한 번 갈 수 있는 곳이 통영이었다. 서울에서부터 내려가려면 넉넉하게 8시간 이상 잡아야 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녹음을 보며 생각했다. 멀다. 예전에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것도 차를 몰아서. 그게 당연했던 시절이었지만, 이토록 편한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시절을 보냈다는 게 좀처럼 실감키 어렵다. 부지런히 달려서 네 시간 반이면 통영이라니, 참 가까워졌다. 쏟아지는 햇살 너머 길게 뻗은 도로 저 앞으로 두 개의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으로 가면 거제, 오른쪽으로 가면 통영. 저 이정표를 만나면 비로소 통영이다.

통영이라는 동네가 처음은 아니다. 두세 차례 다녀갔지만 이전에는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잠시 머물다 갔을 뿐이다. 이 도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별다른 기억이 남지 않았다. 이 도시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도시의 이름 때문이었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비롯된 그 이름.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라는 한산도대첩도 통영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다. 그러니까 이곳은 조선시대 한반도 수군의 사령부가 있던 도시인 것. 통영의 옛 지명인 ‘충무’도 이곳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밀접한 인연을 가진 지역임을 숨기지 않는다. 충무가 통영이 된 건 1995년 전국행정구역개편의 결과다. 당시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가 됐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여행이라더니 이름에 담긴 배경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통영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통영 시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이 지역은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전쟁 초기 여수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을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로 옮겨왔다. 왜군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충무공이 주둔지를 옮기자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왔다. 백전백승의 명장 곁에 있어야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었을 게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면서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은 도읍이 됐고 전쟁 중에도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면서 번영을 이뤘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세병관의 위용

“요즘 젊은 친구들은 동피랑, 서피랑을 많이 찾는다카지만, 토영을 왔으모 세병관을 꼭 봐야지예.”

통영 현지에 있는 지인은 세병관을 꼭 보라고 추천했다. 세병관은 통제영의 중심이 되었던 건축물.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5년)에 완공했다. 이후 약 290년간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수군을 총 지휘하는 수군 사령부의 역할을 했다. 통제영 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지인이 왜 이곳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는지 동감하기 어려웠다. 겉에서 본 통제영 터는 전국에 산재한 숱한 유적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 탓이다. 눈앞으로 길게 뻗은 계단을 올라 지과문(止戈門)을 통과하자 웅장한 전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위용이다.

세병관은 목조단층 건물로는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한다. 앞면 9칸, 옆면 5칸 규모로 눈앞에 길쭉하게 늘어섰는데, 여느 궁궐의 전각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위풍당당하다. 과연 조선의 수군을 총괄하는 자리라 할 만하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로 바다가 보인다. 예전에는 세병관 아랫동네인 문화동 일대까지 바다가 들어왔고, 군함 수백 척이 늘어서서 통제사의 명에 따라 앞바다를 향해 기동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간척의 과정을 거쳐 바다가 저 먼 곳으로 물러나 있는 형국이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뒤편에 통제영의 자리를 급히 정했던 것은 왜군의 기동을 효율적으로 끊어내기 위함이었지만 전란이 끝난 후에는 삼도의 수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경준 통제사의 선택과 안목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 자리라면 수군 전체를 조망하고 먼 바다의 상황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겠구나 싶다. 세병관 마루에 올라앉았다. 세병관은 누구나 안에 들어와 쉬어갈 수 있도록 개방해 놓고 있다. 마침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이 뜨겁다. 전각은 사방이 열려 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기둥과 기둥은 한 폭의 캔버스가 되어 뒤편의 풍광을 그림처럼 담는다. 자연이 건축에 스며 눈을 즐겁게 해주니 자연이 선사하는 명작이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세병관을 휘도는 바람에 대숲의 쏴아 우는 소리가 청량하다.

열두 가지 명품을
만드는 도시

어디를 여행하든 그 지역의 박물관은 꼭 들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관심 없는 이에게는 서울의 박물관이나 통영의 박물관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겠지만, 그 지역의 내역을 소상히 알려주는 곳으로 박물관만한 데가 없다. 통영시립박물관도 마찬가지다. 통영이 지난 세월 동안 품어온 진가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다.

통영시립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원래 통영시청 별관이었다. 충무시와 통영군의 통합 이전에는 통영군청으로 사용했다. 1943년에 지은 건물이니 역사도 깊다. 겉에서 보면 다소 낡은 티가 나지만, 내부는 제법 손을 봐서 세련된 느낌을 준다. 전시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뉘는데 1층은 기획전시실, 2층은 역사실과 민속실로 사용한다. 역사실에서는 지역의 역사와 관련한 유물을 전시 중으로 통영 일대의 역사적 근원을 기원전 5000년 전까지 산정하고 있었다.

이 지역이 번성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역시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시기부터였다. 선조 26년(1593년) 이순신 장군은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됐고, 그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하면서 난을 피하려는 이가 통영 일대로 모여들었다. 통영시립박물관에서 만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시기부터 시작한다. 2층 전시장 벽에서 이런 문구를 마주했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통영은 시대의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세계 근현대 음악사에 굵은 획을 그은 윤이상 선생을 비롯해 소설가 박경리, 미술가 전혁림 등 숱한 예술가가 통영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예술가를 배출되기 시작한 것이 이순신 장군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이 문구는 곧 통영의 열두 공방을 지칭하는 말이다. 통영은 조선 당대 최고의 명품을 생산하는 도시였다. 당시 이 일대에 인구가 늘어나자 전국의 공인을 통영으로 불러들여 공방을 일으켰다. 그렇게 시작한 통영의 공예는 부채, 갓, 문방구, 나전칠기 등 총 12공방으로 자리를 잡았고, 여기서 만들어진 물건은 조선 팔도를 통틀어 최고의 명품으로 대접받았다. 이 박물관에는 12공방의 생산품을 전시해 놓았다. 왜 당대의 명품이라 칭했는지, 그 이유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몰랐던 지역의 찬란한 역사를 하나씩 되짚어 보면서 이 도시를 다시 각인한다. 박물관에 오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통영의 진면모다.

오늘의 통영을 만나는
강구안의 안팎

통영에 오는 사람은 모두 강구안으로 모이는 걸까. 언제 와도 이곳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제법 규모 있는 포구인 강구안은 숙박시설과 중앙시장 등을 끼고 있어 통영 최고의 번화가다. 오늘의 통영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해도 될 만큼 온갖 유명 먹거리와 시설이 이 일대에 집중돼 있다.

바다를 끼고 산책하듯 걷는데 거북선 세 척과 판옥선 한 척이 눈길을 끈다. 모두 실물 크기로 제작된 것인데, 각각 종류가 다르다.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 그리고 한강시민공원에 전시하다 2005년 통영으로 이전한 한강거북선이다. 성인 기준 2천 원의 관람료를 내면 판옥선까지 모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거북선 내부는 크기가 꽤 크고 군사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필 수 있다. 어린아이를 데려온 여행객에게는 꽤 쏠쏠한 체험이 될 만하다.

거북선이 늘어선 포구의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같은 강구안이 맞나 싶을 만큼 또 다른 세계가 이곳에 펼쳐진다. 인파가 몰리는 저편과 달리 이곳은 저렴한 식당과 지나간 시절의 통영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골목 안쪽 대장간에서는 쇠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이쪽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핀다. 골목 여기저기에 시간의 더께를 흠뻑 뒤짚어 쓴 오래된 가옥이 보인다. 마치 저쪽의 강구안과 이쪽의 강구안은 시간이 달리 흐르는 듯하다. 요즘은 옛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임대료가 저렴할수록 힙한 동네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곳도 조만간 그렇게 바뀌어 갈 듯하다.

골목 안쪽에 그럴 듯한 카페가 눈에 띈다. ‘커피로스터스 수다’라는 간판을 단 이곳은 통영 토박이인 윤덕현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인 그는 원래 진주 지역의 연극인 출신. 경상대 연극동아리에서 처음 맛본 무대가 좋아 배우 생활을 시작했지만, 연극인의 삶이란 녹록치 않았다. 8년 만에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며 커피를 배워 문을 연 곳이 이곳 ‘수다’다.

강구안 안쪽 허름한 골목에 자리한 카페는 생각보다 빨리 뿌리를 내렸다. 내부의 테이블은 서넛 정도로 작은 규모지만 직접 블랜딩한 원두 맛이 수준급이어서 나이 지긋한 중장년층과 인근에 거주하는 어르신도 자주 찾는다. 윤 대표는 무대 예술에 생을 걸었던 인물인 만큼 지역 예술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주말이면 공연이나 북콘서트 같이 통영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행사를 여는 이유다. 이제는 언제 어떤 공연이 열리는지를 확인하고 일정을 맞춰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고정 팬이 있을 만큼 강구안의 문화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달달한 플랫화이트 한 잔을 시켜놓고 창밖의 강구안 옛 골목을 바라본다. 먼 옛날 전쟁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이 꾸린 도시에는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이야기가 첩첩이 쌓여 있는 듯했다. 말끔히 잔을 비우고 다시 나서는 길, 강구안 포구의 윤슬이 빛난다. 통영의 여름이 저 바다에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 세병관

국보 제305호다. 최고의 명당에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세병관 자체는 왕권을 상징하고 있어서 내부에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도록 공간이 조성돼 있다. 세병관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것은 편액인데, 가로 2.5미터에 세로 6.5미터로 국내에 현존하는 편액 중 가장 크다. 통영의 자존심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주소 :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
문의 : 055-645-3805

■ 커피로스터스 수다

통영의 중심지 강구안의 뒷골목에 자리한 카페이자 문화 공간이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윤덕현 대표가 이끌며 북콘서트, 인디 밴드 공연 등 통영에서 접하기 어려운 문화행사를 연다. 직접 블랜딩한 커피도 수준급. 통영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찾게 되는 곳이다.

주소 :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323-1
문의 : 055-645-9092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