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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했던 인생의 쉼표, 가치와 의미를 찾는 영화

깨달음 없는 삶이 무슨 의미?

휴일도 없이, 야근을 밥 먹듯 바쁜 게 미덕처럼 살아왔다. 어느덧 인생의 중반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자부심 뒤에 헛헛함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나이가 드니 이해가 간다. 가속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면 가치와 의미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꼭 봐야 할 영화 3편.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21세기 사회를 성과 사회로 규정한다. ‘예스 위 캔’처럼 복수형 긍정을 가진 이 사회에서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우울증, 소진 증후군(번아웃 증후군) 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피로 사회 / 문학과지성사

그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과잉 활동성은 사색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떠다니는 것,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은 깊은 사색 앞에서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다. 긴 것, 느린 것에 대한 접근 역시 오랫동안 머무를 줄 아는 사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열심히 일한 자만이 놀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심지어 휴식의 순간조차 열심히 하라고 강요한다. 어찌 보면 만성 피로에 찌든 우리 자신에게 ‘가끔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피로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잠시 일을 멈추고 사색하는 삶을 복원하는 방법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자신의 삶을 다시 회복하려는 주체나 황폐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영혼을 영화 속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는 ‘라이프’ 매거진의 필름 현상 부서에서 16년을 근무한 월터(벤 스틸러)의 모험을 담았다. 자주 멍 때리면서 상상에 빠지는 것이 습관인 월터는 ‘라이프’ 마지막 호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을 위해 포토그래퍼 숀 오코넬(숀 펜)을 만나러 떠난다.

인생에 특별한 경험이 없어 프로필을 채우지 못하던 그가 필름을 찾기 위해 그린란드에서 상어, 아이슬란드에서 화산 폭발, 히말라야에서 눈표범 보기 등을 경험하면서 한순간에 삶이 바뀐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모든 답은 애초에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인생에서 멋진 순간이 찾아오면 카메라에 담는 것이 아니라(일에서 벗어나) 순전히 자신을 위해 그냥 바라보기를 선택하는 숀의 태도를 배운다. 여행에서 돌아온 월터는 짝사랑하던 여인과 재회하고, 그 귀중한 순간을 잠시 즐긴다. 영화 속에서 월터에게 힘과 자극을 주는 노래로 데이비드 보위의 1969년 히트송 ‘Space Oddity(스페이스 오디티)’가 울려 퍼질 때, 모험을 떠나는 월터의 설렘이 관객에게 전이가 된다.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의 정신과 의사 헥터(사이먼 페그) 역시 홀연히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 행복의 비밀을 찾아서 떠난 그는 은행가, 수도승, 마약 밀매상, 말기암 환자, 옛 애인 등을 차례로 만나면서 삶과 죽음, 행복과 사랑 등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연인 클라라(로자먼드 파이크)가 준 다이어리에 나름 행복의 정의를 적어나간다.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채 여행을 시작했던 헥터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길고 긴 여행을 통해 그는 틀에 박힌 삶에 벗어나는 법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그는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다. ‘우리는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영화는 행복에 대해 개똥철학을 늘어놓기보다는 행복에 대해 자문한다. 슬쩍 코먼 교수(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입을 통해 행복은 부수 효과라고 정의 내린다. 우리는 행복 자체의 추구보다는, 무엇을 추구할 때 얻어지는 행복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로 월터나 헥터가 그런 행복의 비법을 여행 속에서 찾은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상상 속의 자아나 내면 속의 틴틴(<틴틴의 모험> 주인공)을 현실이라는 무대에 꺼내놓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여행을 통해 자신과 대면하고, 공허함과 정서적 결벽증을 치유한다. 이제 이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소중한 순간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훌쩍 홀로 떠났던 월터나 헥터와 달리 함께 여행함으로써 자신을 찾는 경우도 있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2012)은 황혼기의 영국인들이 인도를 찾으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여준다. 모두 각기 다른 사연으로 일상에 지쳐버린 이들이 자이푸르의 호텔로 찾아간다.

하지만 인도 청년 소니(데브 파텔)가 운영하는 호텔은 그들의 상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에블린(주디 덴치)과 6명의 손님은 낙후된 호텔에서 동상이몽에 빠져든다. 인도의 혼란함을 잠시도 참지 못해 결국 남편조차 버리고 떠나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이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 새 출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에블린은 결국 다 괜찮을 거라는 인도 격언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간다. 진짜 실패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늙어서 변화하려는 것에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결심한다. 사실 이국적인 호텔의 즐거움을 꿈꾸고 찾아왔지만 이곳에는 일상을 탈출하는 마법 따위는 없다. 오히려 사랑과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영화는 모든 삶이 존재하는 곳이 인도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각자 삶을 발견할 뿐이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서 집을 떠난 이들이 뜻밖에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면 <위크엔드인 파리>(2013)에서 파리로 결혼기념 여행을 온 노 부부, 닉(짐 브로드벤트)과 멕(린제이 던컨)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다. 낭만적인 로맨스를 되찾고자 예전에 그들이 묶었던 호텔을 방문하지만, 모든 것이 변해버린 상태다. 파리 여행의 첫 시작부터 문제가 일어나면서 이들은 쉬지 않고 티격태격 다투고 연거푸 사고를 일으킨다.

이들은 재미 삼아 무전취식을 하다가 심지어 럭셔리 호텔을 이용한 후 돈을 지불하지 못해 여권을 뺏기기까지 한다. 여행은 더욱 엉망진창이 되지만 결국 이들의 숙성된 사랑은 30년 된 와인보다 향기롭고 깊은 맛을 자아낸다. 학교에서 해고를 당한 닉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솔직히 실패를 실토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한 자신의 콤플렉스와 고통을 허물처럼 벗어 던진다. 인상적인 장면은 닉과 멕이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속의 연인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다. 이들은 노년의 일탈을 찬양하듯 1960년대 파리지엔처럼 파리를 온몸으로 즐긴다. 영화의 엔딩에서 빈털터리 신세가 된 이들은 카페에서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1964)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춤을 춘다. 그들에게 파리 여행은 가벼운 춤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인생이나 행복의 의미를 찾는 방황, 낯선 땅에서 새 터전을 찾는 도전,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여행. 그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매 순간 걱정과 두려움으로 타들어 가는 피곤한 삶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여행을 통해 삶을 치유하는 영화들은 강렬하지만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남긴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 누구나 잠시 충전의 순간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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