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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다는 것,
진지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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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정한 승부는 은퇴 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출발선이 된다. 인생 2막에서 찾고자 하는 도전, 행복, 보람 등의 가치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오롯이 홀로 섰을 때가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은퇴는 인생 최대의 변화다. 현업에 종사할 때는 늘 시간이 없어 문제더니 이렇다 할 취미도 없는 사람은‘오늘은 뭐 하지?’가 고민이 된다.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삼식이 소리는 영 듣기 싫으니 배낭 짊어지고 지하철에 탄다. 이러기도 두세 달이면 진력이 난다. 누구처럼 등산, 대형 할인마트, 도서관, 기원 등을 요일별로 바꿔가며 다녀야 할까. 옷장 속 덩그러니 걸린 양복이 처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고단한 시기를 이겨내고 산업역군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5060 세대이기에 은퇴가 주는 허탈감은 더 크다. 경쟁에서 뒤처질까, 처자식 굶길까 싶어 여유나 휴식과는 담쌓고 살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제 현실에 발을 딛고 자신에게 찾아온 이 변화를 기회로 만들면 된다. 숨을 고르며 신나게 놀아도 보고, 가족에게 곰살 맞게 굴어도 보자.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도 좋다. 자신 앞에 놓인 새 도화지에 무엇을 채울지는 자신의 몫이다. 삶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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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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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저서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 숲)>에서 정든 사람들을 잃어가는 청춘의 아픔을 이야기했었다. 상실의 고통은 잔인하게도 청춘이 한참 지난 세대에게 다시 찾아온다. 세상 풍파를 겪어낸 내공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만큼 인생의 큰 고비가 아닐 수 없다. 예상 못 한 일도 아니건만 은퇴는, 나이 듦은 많은 것을 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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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달콤함, “권력”
김은퇴 씨는 승승장구하던 시절, 동창회를 내심 기다렸다. 학창 시절 잘나가던 친구들보다 번듯한 회사에 다니며 과장, 부장 타이틀을 척척 달았으니 자랑하고픈 마음에 몸이 달았다. 무심한 척 “명함이 또 바뀌었네”하며 승진을 알리던 날에는 술값 기십만 원을 쏜다 해도 아깝지 않았더랬다. 직장에서는 김은퇴 씨의 표정 하나까지 살피는 부하 직원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권력의 맛에 취하곤 했다. 일부러 화난 척하며 생짜를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즐긴 적도 여러 번. 성과를 내라는 회사의 압박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주말 근무를 할 때면 밥벌이의 지겨움을 운운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면 보람을 느꼈고 자부심도 컸던 시절이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그러니까 김은퇴 씨가 더 이상 부장도, 이사도 아니게 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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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통장 안녕! “자금”
부모 잘 만난 금수저가 아니라면, 로또 1등 당첨이라는 행운이 아니라면(인생을 바꿀 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유일무이한 수입원은 월급뿐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는 일상을 한 달간 반복하면 ‘띠링’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월급이 입금된다. 누군가는 월급은 마약이라고 했다. 끊기 어려운 중독성으로 수십 년의 직장생활을 이어오게 만들었다.비록 월급은 입금 순간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리는 통에 통장 아닌 텅장(텅텅 빈 통장)만 남는 현실이지만 그 덕분에 소중한 가족의 평안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회사는 25일이 되어도 김은퇴 씨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 금단 현상이 찾아온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일하는 동안 돈을 벌면서 자산이 늘어나는 경험만 했던 김은퇴 씨. 퇴직금을 맡기면 크게 불려주겠다는 둥, 요즘 이런 사업을 해야 한다는 둥 주변에 돈이야기 하는 사람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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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인정 못 해? “전문성”
김은퇴 씨는 계속 일할 계획이지만 마땅한 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섣불리 치킨집이나 카페 창업은 하고 싶지 않고, 자신이 해오던 업무와 연관된 일을 찾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회사를 그만뒀을 뿐 그 자신은 변한 게 없는데 세상은 그의 가치를 예전과 동등하게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다. 나이 때문에 입사를 거절당하거나 앞자리가 달라지는 월급에 김은퇴 씨는 자존심이 상한다. ‘퇴물’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이쯤 되면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조직이라는 커다란 시스템의 보호에서 벗어나 홀로 남겨진 듯한 마음을 이해해주는 건 오랜 친구들뿐이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위로의 말이 오간다. 김은퇴 씨는 눈높이를 낮춰야 하나 고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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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가 뭐라고? “가족”
김은퇴 씨는 자신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가 달라져 서운하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은커녕 이제 쓸모없는 존재로 보는 시선에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라는 것. 친구는 아내로부터 ‘집에 멀뚱멀뚱 앉아 있지 말고 빨리 일하러 나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소연한다. 김은퇴 씨는 당황스럽다. 더 솔직히 표현하면 그는 서럽고 가족에 대한 배신감에 화나기도 한다. 모든 가정을 김은퇴 씨네 경우처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평소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할수록 가장의 은퇴는 심각한 불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내 집이 가시방석 같아서 배낭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수많은 김은퇴 씨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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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남편증후군’ 앓는 아내
남편의 은퇴는 아내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대략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남편은 하숙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자신과 자녀들의 공간에 남편이 불쑥 들어온 상황이 어색한 것이다. 만약 남편이 평상시와 달리 가족애, 부부애를 강조하며 친근감을 표시한다면 아내는 당황스럽다. 아내는 남편이 낯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남편의 밥상을 차리러 귀가해야 하는 변화가 버겁다. 그러니 “당신은 만날 친구도 없어? 왜 맨날 집에만 있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따박따박 나오는 연금이나 월세 수익, 두둑한 잔고가 없다면 아내의 불안감은 더 큰 볼멘소리로 나올 게 뻔하다. 은퇴남편증후군(남편의 은퇴로 아내의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몸이 아픈 증상)은 황혼이혼도 부른다고 하니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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