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남자들은 위대하다
스크린 속에서 중년의 주인공들이
“난 살아 있다!”라고 읊조리거나
외치는 순간을 종종 볼 수 있다.
각자 이유나 사연은 달라도
이들은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 한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
오늘날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히어로 영화가 세상을 바꾸기 전에,
진짜 남자다움을 찾을 수 있는 장르는
서부 영화나 전쟁 영화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서
오로지 신념 하나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그런 남성들의 세계에선
오로지 강인한 행동이
그의 마음과 신념을 대신할 뿐.
숙명(혹은 죽음)과 대면하는 순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남성들의
세계는 다소 낡았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안톤 후쿠아 감독의
<매그니피센트 7>(2016)이 그렇다.
클래식 웨스턴의 세계관을
그대로 재현한 이 영화는
율 브리너 주연의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평화로운 마을을
비겁한 악당들이 점령하고,
샘(덴젤 워싱턴)을 포함한
7명의 무법자가 이들과 맞선다.
샘 일행은
“정의를 원하죠.
하지만 복수도 원해요!”
라는 엠마(헤일리 베넷)의
요청을 수락하고, 전쟁을 함께 한다.
이것으로 충분한 법.
사실 웨스턴에는
다른 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침몰하는 배가
신호를 보내면 반드시
주위의 배가 구조를 돕는 것처럼,
이것은 오랫동안 지켜온
서부의 생존법칙인 셈이다.
악당들과 주인공들은
마을에서 30분간 전투를 펼친다.
명사수 굿나잇 로비쇼(에단 호크)는
공포를 떨쳐내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패러데이(크리스 프랫)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기관총(개틀링 건)에
홀로 맞선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과묵한 샘과 동료들은 혈투 끝에
마을에 자유를 선사한다.
이들은 모든 웨스턴 영화가 그러하듯
악당을 제거하고 조용히 떠나간다.
영화 엔딩의 대사처럼, 이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위대하다.
<매그니피센트 7>이 정의로운 복수를
선택한 것처럼 전쟁 영화 <퓨리>(2014)
역시 후퇴를 모르는 미군 전차부대
하사 워대디(브래드 피트)와 부하들의
강한 집념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탱크 ‘퓨리’를 이끄는 워대디는
독일 탱크와 교전 중에
탱크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자,
도망가지 않고 길목에서
수많은 독일군에 맞선다.
“난 괜찮아. 이게 내 집이야!”
를 외치며 혼자 탱크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항변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부하들도
한마음으로 뭉쳐 믿을 수 없는
전투를 펼친다.
사려 깊은 마초, 워대디는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담담히
스스로에게 고백하듯
“난 최선을 다했어”
라고 얘기한다.
어린 신병 노먼(로건 레먼)에게
아무한테도 정을 주지 말라고
충고하던 그가 죽음 앞에서
“나도 무섭다”고
진심을 고백하지만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진솔하다.
워대디는 포기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남자가
어떤 영혼을 지녔는지 보여준다.
꼭 전쟁터에서만
전쟁 같은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삶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혹독하고,
전성기가 끝나면 누구나
내리막길로 향하기 마련이다.
왕년의 스타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2008)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스타 레슬러였던
랜디(미키 루크)는 퇴물 신세다.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법.
심장 이상을 겪은 후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면서
일상의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나
스트리퍼 캐시디(마리사 토메이)와
관계를 망쳐버리고 만다.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며
외로움에 몸부림치지만,
그가 돌아갈 곳은 결국 링 위다.
“절대 링을 떠날 수 없다.
이 함성 소리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고 외치는 랜디는
자칫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최고의 매치를 위해 몸을 날린다.
<더 레슬러>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해피엔딩을 약속하지 않으며
신파 요소까지 배제했다.
섣불리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The Wrestler’가 한 남자의
회한과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낼 뿐이다.
이 영화가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할리우드의
돌아온 탕아’ 미키 루크가
망가진 레슬러를 온몸으로 구현해서다.
한때 할리우드를 대표하던 꽃미남에서
무뢰한으로 전락한 미키 루크는
<더 레슬러>로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
링 위에서 이 남자들은 삶을 만끽하고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들의 시행착오와 우왕좌왕.
어쩌면 이들의 선택을,
살아남는 법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치부해도 상관없다.
그들의 도전과 행보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새
뜨거운 심장을 얻는다.
모두 홀로 자신의 길을 걷지만,
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