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성 기대수명 86세
몸집 작아 기초대사율 낮고
지방이 많아 생존에 유리해
女 XX염색체, 유전자 결함때
복제본처럼 빨리 대체 가능
에스트로겐 호르몬 면역 도와
기대수명 80세 머무는 남성
관상동맥질환·암 사망률 높아
성공男 심장병 4배나 많기도
사소한 질병도 적극 치료하고
금연·절주·꾸준한 운동 유지
누구든지 `건강 100세` 거뜬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10년 정도 오래 산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오래 살까? 여성의 식·생활 습관이 더 건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전적인 기질 탓일까?
우리나라의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6년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일 발표한 한국인 기대수명은 2019년 출생아 기준으로 남성 80.3세, 여성 86.3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 78.1세, 여자 83.4세로 우리나라가 각각 2.2세, 2.9세 더 높다. 다만 한국인 건강수명은 2018년 기준 64.4세로, 그 당시 기대수명 82.7세보다 18.3년이나 차이가 났다. 한국인은 64.4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그 이후로 병치레를 하면서 골골하게 산다는 얘기다.
남녀의 실제 수명 차이는 인류 소망이라는 100세 이상 인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나라는 2017년 말 현재 100세 이상 인구 중 여성 비율이 85.9%(3908명 중 3358명·통계청 기준)에 달한다. 그 이전에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다. 2015년 100세인의 여성 비율은 86.5%(3159명 중 2731명), 2000년 91.2%(934명 중 852명), 1990년 90.2%(459명 중 414명)로 거꾸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압도적이다.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와 관련해 과학 저널리스트 마르타 자라스카(`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저자·어크로스 출간)는 △생존에 적합한 체형과 강인함 △남자(XY)와 달리 유전적 결함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을 소유한 염색체(XX) △면역 체계에 도움이 되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등을 꼽았다.
여성의 염색체도 남성보다 오래 사는 수수께끼 중 하나다. 여성 염색체(XX)는 X염색체를 두 개나 가지고 있어 필요하면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대체할 수 있다. 여성 염색체는 몸 안에 모든 유전자의 복제본이나 다름없는 여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자 염색체인 XX쌍은 각각의 부분을 교환해서 교정할 수 있는 반면, 남자 Y염색체는 작은 부분 외에는 모두가 보호막에 싸여 있어 X염색체와는 어떤 방식의 교환도 허용하지 않는다. Y염색체는 남자들의 성향과 비슷하게 자기 스스로 보수관리와 교정을 해나간다.
여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작아서 애초에 잘못될 세포가 적다. 여성 호르몬도 장수에 한몫한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면역 체계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 남성은 바이러스와 세균에 더 민감하다. 남자는 여자들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보편적인 감염 중 70% 이상 걸릴 확률이 더 높다. 에스트로겐과 같은 여성 호르몬은 면역 체계에 힘을 보태주고 동맥의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청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남녀의 선천적 요인이 수명에 영향을 주지만, 전문가들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성권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선천적으로 남성 수명이 뚜렷하게 짧다면 왜 선진국들은 남녀 수명 차이가 작고 저개발국들은 큰지 설명하지 못한다.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며 “금연, 절주, 적정 체중 유지, 운동, 건강한 식단 등의 후천적 요인 개선을 통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남자들이 100세로 가는 길목에서 `낙오자(사망)`가 많다는 얘기다. 남성들은 40~50대 관상동맥 질환에 의한 돌연사, 암, 각종 사고로 의외로 많이 죽는다. 중장년 1차 관문을 통과한 남자들은 주로 70~80대 다시 한번 죽음에 노출된다.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마리안 레가토 교수(`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 저자)는 “40~50대 남성이 죽는 가장 큰 이유는 혈관이 막히는 관상동맥 질환과 암 때문”이라며 “이는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스트레스가 또래 여성들보다 관상동맥, 고혈압, 당뇨병을 비롯한 온갖 질환에 노출시켜 `성공`과 `생명`을 맞바꾼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의 한 연구결과 사회 각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남자들은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진 남자들에 비해 심장병 발생률이 4배나 높았다. 관상동맥 질환 발생률은 이민자와 같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젊은 여성들은 남성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관상동맥 질환을 막아주고 염색체(XX형)가 질환을 유발하는 웬만한 유전자 변이를 스스로 교정해준다.
암은 40~50대 목숨을 앗아가는 두 번째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35~64세의 경우 유방암·갑상선암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암 발생률이 높지만, 남성은 위·대장·간·폐암이 많아 사망률이 높다.
이와 함께 남자들이 몸에 이상 현상이 생겨도 무시하거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미루는 것도 수명을 단축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소한 질병 따위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자신은 불운의 예외일 수 있다는 요행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약을 하루 평균 3~5개 복용하는 70~80대 남성이 많이 죽는 이유는 젊은 시절 잘못된 식·생활 습관에 의한 `질병의 싹`이 표면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원광대 장수과학연구소 교수는 “40~50대 과음 및 흡연, 운동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65~75세에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이 급격히 발생해 일부는 사망하고, 일부는 병에서 회복돼 80~90세 넘게 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