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나?
나도 ‘썸’ 타고 싶다
‘에이, 나이 들어서 뭐 하는 짓이래?’
누구누구가 바람피운다는 말에 쏘아붙였지만
그 이야기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솔직히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 안쪽에는
부러움도 있어서일 것이다.
설레는 사랑을 언제 해봤던가!
나도 가슴 설레는 연애가 하고 싶다….
내가 이래도 되나…?
붉고 노란 색깔로 선명했던
잎들이 갈색으로 변하고
버석버석 물기가 사라져가고,
소슬한 가을바람에 마지막 잎사귀처럼
한들한들 떨어져 길가에 구르는
낙엽들을 보며 중년 남자들은
‘아, 연애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아쉬운 한숨을 내쉰다.
젊은 날 그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던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불길이 사위어가는 모닥불에
새로운 장작을 던져 넣은 것처럼
나를 뜨거운 ‘사랑의 불길 ’속으로
밀어 넣어줄 아름다운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가을이 깊어가니
나도 연애 한번 뜨겁게 하고 싶네요,
옛날 첫사랑 그녀도 생각나고….”
“이대로 시들어버리긴
너무 아깝잖아요?
사랑 한번 다시 해봤으면….”
싱글인 사람이야 ‘옆구리가 시려서’
누군가를 찾는다 하지만,
짝이 멀쩡히 있는 남자가
‘뒤늦은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는 ‘바람의 유전자’가
내재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몇몇 문화인류학자들은
현세의 사람들이 남녀를 막론하고,
가장 바람둥이였던 이의
후손일 거라고 말한다.
오랜 옛날부터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지만,
이따금 다른 여자들과
밀회를 즐겼던 남자들이
더 많은 유전자를 퍼뜨렸고,
다른 남자와 몰래 바람을 피운
여자들은 아이를 기르는 데
더 부가적인 자원을 획득해서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울 수가 있었을 테다.
또 원래의 배우자를 떠나
다른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더 다양한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의
자녀들은 더 많이 살아남아,
도취와 애착 그리고 장기적으로
편안한 관계에 초조해하는
유전적인 특성을 남겼을 거라는 것.
수백만 년 전에는 짝을 만나고
헤어지기가 더 쉽고 잦은 일이었을 게다.
그래서 사람의 ‘바람기’는
인류의 조상들이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헤어지고 다시 다른 짝 찾기를 반복하며
발달한 생리적 요소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주장하는 인류학자들이 적지 않다.
또 노르베르트 비숍이라는 동물행동학자는
‘동물들은 과도한 안전성을 확보하면,
자기가 애착하던 대상에게서 물러서는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그는
‘싫증반응’이라고 불렀는데,
동물뿐 아니라 사람들 역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장기적으로 편안한 짝에게
싫증을 느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
이런 내재된 ‘바람기’와 ‘싫증반응’이
바람을 부르는 것일 테다
바람꾼, 특성이 있다
바람을 잘 피우는 사람들은 특성이 있다.
생리적으로 뇌 속 효소 중 하나인
모노아민옥시다제(MAO)의 수치가 낮은
어른들은 사교적이며, 술을 많이 마시고,
마약을 탐닉하거나 자동차 질주를 즐기고,
록 콘서트와 술집, 유흥업소에서
흥분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단다.
또 적극적이고 다양한
성생활을 추구하기도 한다.
즉 스릴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바람에 빠질 확률이 많다는 것.
바람을 피우는 이유도 다양해서
사랑 때문에,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
결혼생활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배우자와 헤어질 구실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신이 특별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바람을 피운다.
또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친하게 지낼 사람이 필요해서,
단순히 섹스를 원해서 간통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배우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완전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
자신이 아직 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마지막 사랑을 갈구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익숙해진 상대가 아닌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정말 흥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사라져버린 듯한
연애 감정도 다시 살아나고,
세상이 생동감을 갖고 반짝거리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갑자기 자신이 매력을 갖춘
능력남처럼 생각되고,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수도 있다.
게다가 새로 시작된 섹스는 신비하고
나를 다시 젊음의 생기로 넘치게 하며,
상대의 만족은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바람, 생각만큼 아름다울까?
이런 신나는 세월을 잠시나마 구가하는
당신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황홀한 시기는 끝나게 되어 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이상 그녀에게 설레지 않고,
이런 아슬아슬한 스릴의 만남이 불안해진다.
뜨거운 열정으로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그녀와의 밀회는 점점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요구하는 그녀의 보챔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바람의 끝은 참으로 비루하다.
일단 신뢰와 사랑으로 구축했던
가정이 불안해지고, 거짓말은 쌓여가고
죄의식은 깊어진다.
간통죄가 없어졌다고
간통이 옳은 일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된
배우자가 겪을 고통은 너무나 크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한 번의 바람이 가정을 깨지는 않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에 회복하지 못할 흉터를 남긴다.
상담의 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바람꾼(?)들에게
내가 조언하는 것은
‘인생은 단순한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인생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특히 혼외 남녀의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행복한 결말은 거의 못 보았다.
어느 한 쪽은 정리해야 한다.
사람은 두 마음으로 살기 어렵다.
아니면 어느 쪽도 온전하지 않은 사랑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하든지.
오스카 와일드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의 두 가지 큰 비극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