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코리아 전 회장 김상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후
찾아오는 평생 즐거운 삶
세계 제1의 화장품 회사
로레알코리아의 회장이었던
김상주 공방장은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중소기업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할 뿐 아니라
취미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경기도 수원 소재의 ‘스페셜티
커피공방’까지 운영 중이다.
김상주 공방장이 전하는
은퇴 이후 더욱 생기 넘치는
삶의 비법을 소개한다.
평생 좋아하는 일,
재미있는 일에 도전했다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는 회사 사장이자
커피공방의 공방장이기도 하고,
젊은 학생들의 멘토인 그에게
가장 걸맞은 호칭은 무엇일까?
“호칭이 뭐가 중요합니까?
어떤 호칭으로 불리든
저는 항상 같은 사람입니다.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세요.
공방장도 좋고요.”
그래서 이제부터 그를
공방장으로 부르겠다.
김 공방장은 스스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신한다.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여유로운 미소로 성공을 말하는
그를 보며 혹시 금수저로 태어나
순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상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직회사에 입사한 그는
그곳에서 만난 여공의 한마디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안일한 생각에
머물던 자신과 달리 하루 12시간을
일하느라 힘들지만 야학에 다니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 여공의 말.
그는 당장 다음 날 사표를 내고
대학 진학을 위해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여전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입주과외를 하면서도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 했고 결핵을 앓기도 했지만
대학에 이어 대학원까지 다니며
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 당시 회계사가
기업 감사를 나가면
판검사 같은 대접을 받았어요.
공인 회계사가 드물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회계사라는 일은
제게 보람을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호텔에 어시스턴트로 들어갔습니다.”
호텔 입사는 그 일이
재미있어 보여서였단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따라간다고 했던가?
입사 1년 만에 CFO 자리를 꿰찼지만
그는 아쉬움을 느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지나치게
편한 나날이 계속되자 다시금
그는 재미를 찾아 떠났다.
그렇게 만난 것이 바로
세계적인 기업 로레알이었다.
지위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이
로레알의 한국 진출 타당성 조사로
연을 맺고 11년이 지나서는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회장을 맡은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그는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저는 회장이라는 자리를
독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종일 회의만 하는 회장보다
현장이 더 좋았으니까요.
11년 동안 로레알 현지화에
성공했으니 제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꿈꾸던 후학 양성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지요.”
가장 높은 곳에서 과감히
자리를 내려놓기를 반복한
김상주 공방장.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게 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8 to 6,
은퇴 후에도 여전히 바쁘다
은퇴한 사람의 일상을 떠올리면
대부분 한가로움일 테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집 안을 서성이거나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과거 같지 않은 자신을 보며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김 공방장은 은퇴 후
더욱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 돌아와 컨설팅 회사를 차리고
중소기업 경영 컨설팅에 힘을 쏟았다.
자신이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벌고 싶은
청년 창업가들을 돕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꿈을 전하고 컨설팅을 하는 와중에
커피에 빠져 커피공방을 차렸다.
정성스럽게 볶은 원두를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데
만족하던 그는 공방을 찾아와
커피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못 이겨 아예 카페를 차렸다.
스페셜티 커피공방에서 나오는 수익은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데 쓴다.
“이 세상에 와서 죽고 나면
무언가 남기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자식이나 재산은
남기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눈을 감는 순간
‘내가 뭘 위해 살았지?’라고
되돌아볼 때 탐욕스러운 기억만
남는다면 슬플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 육체, 시간을 보태서
누군가를 돕는다면 마음에 새겨질 거예요.
제가 커피 원두를 로스팅할 때
사랑으로 볶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볶은 원두로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그 자체가 사랑을 전하는 한 방법이니까요.”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은퇴 후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그의 공통된 행보다.
옷보다 옷을 입은
자신에 집중하라
김 공방장은 은퇴 후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 이유가 사회에서 받았던 대접에
대한 미련이라고 단언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예전 같은 대접을 안 해주는 것에
서운함이 큰 것이지요.
그런데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옷과 같은 것이에요.
멋진 옷을 입든 허름한 옷을 입든
그 옷을 입은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다면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은퇴 후에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어요.”
김 공방장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예전 같은 수입이 없더라도
내 한 몸 누일 공간이 있고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자신 역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때마다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각오를 거듭했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투자를 잘해서 은퇴할 때
50억 원이라는 돈을 갖고 있는 사람도
돈 쓰는 것에 겁을 내는 모습을 봅니다.
1년에 1억씩 써도 50년을 쓸 수 있는데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돈 쓰는 것을 겁내는 것이죠.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외롭게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김 공방장은 은퇴 후 무슨 일을 하든
젊을 때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주력하다 보면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고 또 도전할 일도 생긴다는 것.
자신 역시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과
원두 로스팅을 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끊임없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경험을 근거로 내세웠다.
내가 돕는 사람의 변화가
나에게 가장 큰 보상
김 공방장은 요즘 들어
100세 시대이니 노후를 준비하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실제 액티브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75세 정도가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그 후는 젊을 때처럼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가 올해 65세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0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전에 그만둘 수도 있고요.
하지만 가능한 동안에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저 역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겁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젊은 창업인의 컨설팅을 하면서
그들의 변화를 볼 때마다
큰 보상을 받는 느낌이라는 김 공방장.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이나
재능을 쓰다 보면 보상을
기대하지 않아도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절감한 그는 자신의 작은 조언이
누군가에게 변화를 일으켜
서로 돕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