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과도한 존재감이 고민?
그 존재감이 해법이다!
펜션에서 제사를 지내자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가장을 뺀 가족들의 바람은
가장의 말 한마디에 풍비박산.
늘 그렇다.
결정자는 오직 가장 혼자다.
감히 가장의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 행복해야 하니까.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남자들의 모임은 대충 이렇다.
간단히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신상 조사에 들어간다.
먼저 나이 공개로 형 동생을 정한다.
그다음은 출신 학교와 학번.
나이와 무관하게
‘학번 깡패’로 한 번 더 걸러진다.
이 정도 필터링이 끝나고,
자기보다 아래다 싶으면
‘어 그럼 누구 알겠네?’라며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다.
남자들의 습성,
바로 서열문화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군대문화가 큰 몫을 한다.
이 문화는 전역과 동시에
사회생활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끝일까?
아니다.
더 오래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의 영향도 있다.
아버지는 늘 특별한 존재였다.
어머니는 아버지 전용의 반찬을
따로 만들기도 했고, 자녀들은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우르르 나가
아버지께 인사했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문화가 그랬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여성도 서열문화에 익숙해졌다.
어머니의 삶은 ‘감내’였다.
딸은 그런 어머니의 삶을 통해
바람직한 여성상을 배웠을 것이다.
미투 운동은 많은 것을 바꿨다.
사회는 물론 직장 문화도 바꾸었다.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 한 사람만 빼고.
물론 이 변화를 수용한 가장도
많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다.
그 마음속에는 지금껏 누렸던
‘가장의 권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미움이 아니라 서열
권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모범, 격려, 응원으로
바람직한 영향력을 미치는
긍정적 권위,
제압과 통제, 군림으로
대변되는 부정적 권위다.
그렇다면
부정적 권위의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신뢰는 과연 어떨까?
가장의 권위를 고집하는 가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부정적 권위가 큰
아버지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으며,
그런 가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입지 상실에 대한 불안함일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장성한 자녀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듣기 싫은 바른말을 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객관적으로 이런 모습은
자녀가 건강해지는 것으로
축하해야 한다.
하지만
부정적 권위의 가장은
가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더 강력한 통제와 구속,
명령이 이어진다.
권위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결국 트집으로 발전한다.
자녀가 승진 시험에서 실패했다면
“다음엔 꼭 될 거야!”라는 격려가 아닌
“내 말 안 들어서 그런 거야.
나 무시하고 까불더니.”라고 상처를 준다.
중요한 것은
자녀가 미워서가 아니라
서열화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이 틀이 깨지면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감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는 모르지만,
아버지에게는 무척 중요한 것이다.
선 인정, 후 부탁
가족 모두에게는
‘같이 잘 살자’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
한쪽에서 세게 공격적으로 나가면,
상대도 공격으로 인식하고 똑같이 대한다.
현자의 관점이 필요하다.
세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이 붕괴될까 두려운 것이며,
자신의 고집이 관철되는 것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의 신념과 가치관을
먼저 인정해줘야 한다.
어머니와 아들딸이 아량을 가지고
지혜롭게 아버지를 대해야 한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지.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잘 지내게 된 것도
다 당신 덕이야”
라는 아내의 진심 어린 칭찬,
“아빠 덕에 우리가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하고.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깨닫게 되더라”
라는 자녀의 진심이 담긴 인정.
가족의 인정에 아버지는 뿌듯해한다.
포인트는
가장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와 칭찬이다.
가장은 본인이 중시하는 권위를 인정받았고,
아내와 자녀는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가장의 과도한 존재감,
결국 그게 해법이다
이주은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상담학 석사
EBS <달라졌어요> 책임 전문가 7년간 출연
현재 이주은 부부상담 본점 및 강남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