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벗어던져라!
활기찬 삶을 위한 처방
넘쳐나던 활력은 어디로 갔는지,
온통 우울하고 잠도 안 온다.
이유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우울증은 현대판 신생 병이다.
그렇다고 계속 고개 숙이고만 살겠는가.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의 활기 넘치는
주인공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다.
태양광의 감소로
체내 비타민 생성이 줄어든다.
아침저녁 기온차로 인해
신체 호르몬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고독하고, 센티멘털하고,
멜랑콜리한 기분이 밀려드는 가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0%가 가을 증후군,
의학적 용어로 ‘계절성 정서장애’에
걸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그중 17.8%가 이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한 번쯤은 그런 고독감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기의 일시적 기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계절성 정서장애가 아닌
일상적인 우울증, 즉 ‘우울장애’는 위험하다.
우리나라 신경정신학회 자료에 따르면
자살 기도자의 70~80%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70% 정도가
‘주요우울장애’ 환자들이라고 한다.
또 우울증 환자의 50%는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
10~15%가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줄고 있다
정신적 질병이라면 무엇보다도
뇌신경과 정신질환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는 신경정신과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흔히 마음의 병이라고 불리는 우울증도
근본적으로는 육체적, 즉 뇌 이상이나
뇌신경 이상 또는 그 둘의 연결 이상에서
오는 질병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세훈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정훈 원장의 대답은 다소 모호하다.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경정신과에서 다루는 병 대부분은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원인을 찾기 힘들기보다는
원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단정하여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이죠.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신경과 ‘신경전달물질’이 원인인 건 맞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요인일 뿐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작용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엔 신경정신과의 처방만으로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흡연은 폐암을 유발한다.
그러나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해서
폐암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원인은 한 가지일 수가 없다.
신경정신과의 기본적이자
주된 치료법이 약물치료다.
“외과적 질병과 달리 정신 질병은
정해진 처방일지라도 여러 요인 때문에
개인마다 효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일단 약물치료 후 경과를 지켜보고,
약물의 투여량이나 종류를 다시 처방합니다.”
뇌는 수많은 화학물질로 기능을 한다.
감정도 화학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
감정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은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한다.
신경전달물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생체아민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은 주요 매개물인데,
특히 기분 조절이나 불안, 통각, 식욕, 수면,
성적 행동 그리고 충동적 행동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은 세로토닌이다.
신경정신과에서는 세로토닌과
그 외의 신경전달물질의 결핍으로
감정이 원활히 전달되지 않으면서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
약물치료는 바로 그 부족한
화학물질을 보강해주는 치료다.
“약물 이전에는
상담이 주된 치료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치료 기간이 짧고
효과가 뚜렷한 약물치료가 등장하면서
상담치료는 점차 전문분야로
세분화되는 추세입니다.
약물치료 효과가 미미한 경우
대개 유전이나 환경이
또 하나의 요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약물과 함께
상담치료가 병행되어야 효과적입니다.
뇌와 육체의 영양 밸런스가 중요하다
개인별, 사례별로 증세가
다를 수밖에 없는 우울증은
그 특성 때문에 다른 질병보다
연구와 통계 자료가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김정훈 과장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은 현대 의학에서 치료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축적된 자료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1990년대에 겨우
우울증 치료에 대한
치료지침이 개발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에야 비로소
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울증의 치료적 한계를
의사나 연구자들의 때늦은 대응
탓으로만 할 수는 없다.
우울증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중증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증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개인들 역시
이를 간과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근래에는 많이 달라졌다.
만성피로감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전문 클리닉을 찾기 시작했고,
불면증이나 우울증 같은 현대인들의
만성질환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도일병원 만성피로클리닉을 맡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동환 원장은
체내 영양 불균형을 한 원인으로 꼽는다.
“세로토닌의 부족은
근본적으로 몸에서 세로토닌을
생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치료하지 않고
세로토닌만 보강하는 것은
일시적 치료일 뿐
근본적 치료가 될 수 없습니다.”
탄수화물은 뇌 기능의 원동력이고,
지방은 고성능 에너지이며,
단백질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든다.
미네랄이 부족하면 우울해질 수 있고,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
식사를 거르면 단백질 수치가 떨어지고,
행여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담배를 피운다면 비타민이 소모된다.
결국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게 되면서
우울증이 온다.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영양 부족은 몸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까지 해치게 되는 것이다.
개인마다 부족한 요소가 다르지 않을까?
여러 가지 검사가 있지만
이동환 원장은 가장 정확한 검사로
‘소변 유기산 검사’를 추천한다.
“환자의 몸에 어떤 요소가 부족한지를
알 수 있는 검사입니다. 신체에서는
수만 가지의 화학반응이 일어나는데,
그중 어느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검사를 하면 영양 결핍이나
호르몬 부족 등 여러 세포 기능의
문제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슈퍼맨들의 우울한 초상
김정훈 과장도 말했지만
아무리 뇌와 육체를 건강하게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환경적 요인이다.
물론 환자나 가족, 주변인들의
노력만 있다면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만약 환경적 요인이 단순히
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대 문명의 급속한 진보,
자본주의의 무한 확장 그리고
그에 따른 경쟁과 소외 같은 문제들 말이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근원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왜 오늘날 갑자기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교
한병철 교수의 저서 <피로사회>에 있다.
그는 과거의 사회를 ‘규율 사회’로,
현대의 사회를 ‘성과 사회’로 규정하고,
이러한 성과 사회가 지나치게
긍정성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게 뭐가 문제란 말일까?
성과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성을 미덕으로 내세운다.
일종의 강요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할 수 있음’을
강요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자기 의지라고 생각한다.
한병철 교수는
이러한 착각적 자유 의지가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정신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
한병철 교수의 말처럼
‘할 수 있다’의 지나친 긍정성은
이 사회의 분위기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이다.
그래서 만약 긍정성이
현실적 벽에 부딪혀 좌절하게 되면
그 모든 탓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해내야 하는데 해내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과 ‘다 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현실과 마주했을 때 그 절망감,
그 분노가 스스로를 낙오자, 패배자로
낙인찍어 우울증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것.
긍정성 과잉은 우울증의 원인이다.
과잉된 긍정성은
부정성의 회복으로 상쇄시켜야 한다.
여기서 부정성은
현실 속 자기 자신에 대한
똑바른 인지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 정도의 능력밖에 없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할 수 없음’에 이어
‘하지 않음’의 미덕을 되살리고,
사색적인 삶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긍정성의 과잉은 분수 이상의 활동성으로
이어져 탈진을 가져온다.
탈진은 곧 우울증의 진입 단계다.
그러나 ‘하지 않음’, ‘그만둔다는 것’의
부정성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드리웠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다.
옛날 철학자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흘러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사색의 시간이
아주 중요한 일과였다.
만약 미약한 개인이 거대한 성과 사회의
쉴 틈 없는 톱니바퀴 속에서 사색적인 삶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현대인의 불치병이라는
우울증은 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