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
그 순간을 못 참고
버럭 화를 내고 나면
분위기는 한겨울 맹추위처럼
분위기가 싸해진다.
말 걸기는커녕 눈 맞추기도 껄끄럽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말을 걸기에도
멋쩍기는 마찬가지.
이 ‘버럭’, 어떻게 해야 할까?
퇴직 후 심심하던 차에
대학 동기 모임을 한다는
연락을 받은 배태랑 씨.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볼 생각에 들떠
나름 잔뜩 멋을 내고 집을 나섰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남자 동기들은 머리숱이 휑하고
벨트는 뱃살을 버겁게 받치고 있다.
여자 동기도 앳된 얼굴은 간 데 없고,
퍼머 머리부터 아줌마 티가 줄줄 난다.
그래도 역시 옛 친구가 최고라는
생각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기분 좋게
수다를 떠는데 한 친구가
배태랑 씨가 앉은 테이블로 오더니
부동산 경매로 돈 번 자랑을 한다.
다들 부럽게 듣고 있는데
갑자기 베테랑 씨에게
“너 유치권이 뭔지 알지?”라며 묻는다.
일순 다들 배태랑 씨를 향한 시선.
답을 할 수 없던 배태랑 씨는
귀까지 빨개진다.
그 순간 그 친구가 결정타를 날린다.
“건설회사 부장까지
한 놈이 그것도 모르냐?”
맞는 말에 화가 난다.
생각해보자. 언제 화가 날까?
틀린 말에 화가 날까?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대부분 맞는 말에 화가 난다.
내가 부족한 점, 나의 약점이
드러났을 때 화가 난다.
숨기고 싶은 걸 들켰을 때,
부족한 점이 드러날 때
불쑥 화가 올라온다.
게다가 여러 사람 앞이라면
창피한 감정이 더 커져
더 큰 화가 나게 마련이다.
그 자리에서
화를 내지 않고 참는다 해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불편하고,
상대에 대한 미움은 계속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 간에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을 탓하는 것이다.
면박을 준 상대는 예의 없는 사람,
심지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경우 자기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모임에서 버럭 화를 냈다면,
다른 동기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를
다 꿰차고 있어야 할까?
대부분 잘 아는 분야와
그렇지 못한 분야가 있다.
당당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게 말이야.
그건 내가 모르는 거네.
사실 일만 했지,
부동산 관련된 모든 걸
꿰찰 수는 없잖아?”
여기에 한술 더 떠
“내가 그걸 모르니
설명해주면 고맙겠어”
라고 하면 의도치 않게
공격한 사람도 머쓱해지게 마련.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상대도 띄워주고, 자신도 큰 사람이 되는
기막힌 반전의 기회가 된다.
화를 조금 더 살펴보자.
면박을 준 친구 때문에 화가 난 게 클까?
아니면 자신의 요인이 더 클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본다면
내 쪽의 원인이 훨씬 더 크다.
그걸 인정하고 성찰하면
결국 자신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화인가, 지시인가?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중년 남성은 간혹 상대에게
이야기한 것을 대화라고 착각한다.
엄격히 말하면 대화라기보다는 지시다.
그도 그럴 것이, 중년 남성은
지시로 점철된 군 복무와 사회생활을 했다.
소위 상명하복. 말하는 아빠나 남편은
대화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시와 명령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가장과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에게 쉽지 않다.
결국 무시당하는 느낌이
화로 발전하게 된다.
게다가 미투 운동 이후,
남녀 간의 문제를 넘어
상대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화라는 무기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두려움의 표출일 수 있다.
화라는 감정은 그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를 화로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불편함, 두려움,
불안정, 불안함으로 접근해야 한다.
퇴직한 중년 남성의 경우
대인관계가 상당히 좁아지고
화를 내는 대상이 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따금 서비스업 등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된 소위 갑질 뉴스를 보기도 한다.
물론 그 안에는 불편함과 억울함도 있지만,
어느 정도 적당히 화를 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화를 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을 보면 정말 성인 같은 사람이 있다.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나 극히 적은 경우.
이 경우 화는 나쁜 것이고,
‘화를 내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나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화를 발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 안 하고 화를 참는 것도 화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삭이는 것은
오히려 자기에게 더 나쁠 수 있다.
그렇다고 버럭 화를 내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화가 나는 원인을 찾아내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 가장의 화풀이 대상은
아내인 경우가 많다.
버럭 화를 내고 아내의 눈치를 보고,
가장의 권위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스스로도 불편할 것.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솔직함과 인정이다.
“내가 화내서 많이 속상했지?
내가 당신을 함부로 대했네. 미안해”
라고 말하는 것이다.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주겠지’라며
슬쩍 넘어가는 게 아니라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더불어
“당신은 내가 가장 믿는
배우자니까 화를 냈어.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그렇게 화내지 않았을 거야.
미안해. 내가 부족했네”
라는 말은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신뢰와 존중까지 더할 수 있다.
화가 나면 욱하는 감정 표현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되,
화를 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진정한 베테랑이다.
이주은 상담가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상담학 석사
EBS <달라졌어요> 책임 전문가 출연
현) 이주은 부부상담 대표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