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꼭 필요하다
중년의 ‘놀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중년이 된 당신.
중년 이후의 삶은
어떻게 즐길 것인가.
행복한 인생을 위해
필요한 건 잘 노는 일.
풍족한 자금과
여유로운 시간만이
중년 이후 삶의 질을
가름하는 게 아니다.
인생의 진짜 즐거움은
잘 노는 데서 출발한다.
주말이 되면 S극와 N극이
서로 끌리듯 소파와 친구가 된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소파로 달려가 털썩 누우면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스마트폰과 TV 리모컨을 번갈아 손에 들고
한 시간, 두 시간 마냥 시간을 흘려보낸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외출하는 아내는
뒹굴기만 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은 자신을 슬쩍 흘겨보고는
인사도 없이 나가버리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는 일에 이미 익숙해졌다.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다.
독립해 사는 아이들은 집에 오면
아내의 스케줄만 묻는다.
아빠는 늘 소파에 찰싹붙어 있으니까.
어딜 가지도 않고 무얼 하지도 않는
남편은 붙박이가구 정도의 존재감이랄까.
놀아야 하는 이유?
인생에 놀이가 갖는 중요성
‘구글’은 2013년 말 혁신 원칙을 발표했다.
‘직원들에게 20%의 시간을 줘라.’
회사 업무와 무관한 일이라도
직원이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을 주면
그것이 창의적 발상으로 이어져
언젠가 결과로 나온다는 확신을 갖고
회사는 직원들에게 놀라고 권했다.
노는 일은
회사 경영 차원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 표현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은
놀이를 하기 위함이며
놀이는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는
창조적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놀이는 넘쳐나는 에너지를
쏟아내기 위해서
또는 나약하게 태어난 인간이
생존을 위해 연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꿉놀이로 부모 역할을 배운다는 것.
여럿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사회적 관점 획득,
즉 상대의 의도와 생각을 읽어내고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 대처하는 능력도
놀이로부터 길러진다는 견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정화하기 위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놀이를 한다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주장도 있다.
백과사전은 놀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놀이
인간의 모든 신체적·정신적 활동 가운데
생존과 관련된 활동을 제외한 것으로
보통 일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놀이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참여를
특징으로 하고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재미나 만족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원시 농경사회에서는
일과 놀이가 일치했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놀이를 일과 다른
별개의 유희로 여긴다.
다음 백과
놀이에 대한 정의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뛰는 게 싫은 사람에게 축구나 농구는
놀이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 어려운 수학 공식을 증명하는 일을
놀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놀이는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노는’ 그 움직임 자체를 의미한다.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놀이에 임하며
언제라도 부담 없이 놀이를 중단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은 놀이를 할 때
집중하고 긴장한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즐기는 태도를 통해
사람은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도서 <논다는 것>의 저자 이명석 씨는
‘재미있으면서도 잘하는 것을 찾아야
행복하고 그걸 찾는 게 바로 놀이’라고 말한다.
그는 놀이에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휴식한다는 의미, 또 무언가를 배우고
창조성을 키우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또한 좌절과 성공, 실패와 극복, 경쟁과 협동 등
삶의 원리를 깨우치고 감정의 방어력을
높여준다고 주장한다.
결국 놀이는 공놀이부터 삶을 살아가는
틀을 구축하는 행위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잘 논다는 것은
곧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놀 줄 아는 사람들
모험을 즐기는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자산 46조를 가진 거부 세르게이는
노는 방식도 남다르다.
아드레날린 중독이라고 여겨질 만큼
그는 모험과도 같은 럭셔리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스카이다이빙, 공중 그네, 스키 등
자신의 몸을 한계에 몰아넣는 경험을 통해
세르게이 브린은 만족을 느낀다.
3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금을 지불하고
국제우주정거장 여행 티켓을 예약한 그는
무중력 스포츠를 즐기며 우주여행을 준비한다.
놀이 공간을 가진
문화평론가 김갑수
문화평론가로 다수의 매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김갑수는
시인, 대학교수, 칼럼니스트, 방송 진행자 등
무수한 타이틀로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갔다가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집 외에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소리 혹은 음향기기 등은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고 인생 전반을 차지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체스를 즐기는
버진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자그마한 레코드 가게를
항공·미디어·관광 산업 등을 갖춘
버진그룹으로 키워낸 리처드 브랜슨.
그는 성공 비결을 묻자
“열심히 일하고 언제나 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무엇보다 즐기려고 노력한다.
일과 재미는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때서야 바로 일을 즐긴다는 느낌이 온다”고
답하며 ‘펀(Fun) 경영’ 철학을 피력했다.
그런 그의 취미는 체스다.
스포츠가 가진 요소인
전술, 용기, 계획성, 용기 등이
체스에 합쳐져 있기에 즐긴다고 한다.
소박한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버크셔해서웨이 CEO 워렌 버핏
세계적인 투자가로 알려진 워렌 버핏은
기부 등을 통한 사회공헌에도 앞장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가 사랑을 얻기 위해 하와이 전통 악기인
우쿨렐레 연주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빌 게이츠와는 탁구를 함께 치기도 한다.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 몸담은
워렌 버핏의 놀이가 우쿨렐레 연주와
탁구 치기라니 의외지만,
그는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일상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나이를 잊고
그림을 즐기는 김기윤 할머니
19년 여름, 전남 무안
승달문화예술회관에서
95세 김기윤 할머니의 일곱 번째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할머니는
붓이 가는 대로 순수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손에 공을 들고 있다.
할머니는
“친구들과 하는 공치기는 재밌어요.
잘 놀아야 잘 사는 것이죠“
라고 그림을 설명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등 고난의 세월
살아온 백발의 할머니는 공부한 적도 없는
인생의 지혜를 깨닫고 실천하는 중이다.
나이나 환경 탓 대신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유희로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제대로 놀아보자!
새롭게 즐겨보자!
사소한 재미에 목숨을 걸어라
자동차를 갖는 게 소원이었지만
어느새 브랜드, 옵션 등을 따지며
만족을 찾는다.
내 명의로 된 집이 생겨 행복했지만
이제 어느 동네의 특정 아파트라야 한다.
이는 ‘결과로서의 행복’을 뜻한다.
‘과정으로서의 행복’은 어떤 일에
몰두할 때 행복하다는 의미다.
자신만의 놀이를 찾아 나선 이상
엄청난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환상을 갖기 쉽고 이미 자극적인 환경에
익숙해졌을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하게
즐길 줄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만 다양하게 즐길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에 그럴싸한, 내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놀이를 찾는 건 결코 중요하지 않다.
뇌가 쾌락 상태에 빠지도록 놀아라
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충분히 재미있고
삶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베타 엔도르핀과 네오테니 사고를
활용하지 않으면 노는 게 아니다.
베타 엔도르핀은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할 때 배출되는
신경물질로 긍정 호르몬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네오테니는
유아적 특징을 뜻하는 학술용어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호기심, 상상력, 유연성, 유머 감각
같은 특징을 잃어간다.
도서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의 저자
사토 도미오 작가는 영화 감상이나
책 읽기와 같은 소극적인 방법 대신
직접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권한다.
저자 자신도 모터사이클, 요트, 조깅
등을 주로 하는데 신체 근육을 고르게
이완하는 과정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한다.
베타 엔도르핀과 네오테니가 만나면
뇌의 상승효과가 커진다.
놀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각나
일로 연결되기도 한다.
같이 놀 공동체를 찾아라
도무지 재미있는 일이 뭔지
찾지 못하는 경우라면
호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과
관련한 단어를 아무거나
인터넷 검색창에 적어본다.
예를 들어 ‘강아지’를 입력하면
수만 가지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이다.
그중 마음에 드는 행사나
모임 등에 참여해본다.
놀이 공동체는
중장년 남성에게서 흔히 보이는
낯가림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고
회사 생활도 곧잘 해왔지만
의외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남성들이 많다.
처음 본 사람과는 대화의 물꼬조차
트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취미가 같은 사람과 만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 친해지고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만난
낯선 아이와 금세 함께 놀듯 말이다.
뭔가 배울 수 있는 놀이를 하라
나를 위한 일상의 놀이를 찾으라고 하면
문화예술 계통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도서 <놀이의 품격>에서는
서핑을 좋아하는 남성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는 파도 타는 실력을 연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핑의 역사를 알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면서 놀이의 깊이를 넓혀간다.
놀라고 하더니
또 공부하라는 말이냐
반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흥미를 갖는 분야가 생기면
스스로 달라질 것이다.
자연스레 여러 가지를 알게 되면서
자기 만족도가 커지고, 그러면 단순히
그에 머물지 않고 대화의 장에서
기발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놀아라
앞서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의 유형 중
보상의 유무를 놀이를 찾는 기준으로
삼는 예를 소개했다.
뭔가 무미건조하고 씁쓸한 경우다.
돈이나 든든한 인맥을 갖는 일보다
더 벅찬 환희를 느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0살, 60살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놀아야 한다.
내 호기심이 발동하고
콩닥콩닥 가슴 설레는 일을
놀이로 삼아야 제대로 놀 수 있다.
관심이 있는 것이어야 열정이 생기고
지속할 힘이 나온다.
보상을 바라고 참고 견뎌야 한다면
그건 노동일 뿐 놀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질 삶에서는
친구 따라 강남 가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도록 한다.
역할과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라
낮 12시가 되면 누구랄 것 없이
일어나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
보통 회사에서 보는 흔한 풍경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었으니 밥을 먹는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의지대로만
행동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주말에는 시계를 보며
행동을 규정하는 틀에서
벗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이
불면증을 낳는다고들 하지 않던가.
아버지, 아들, 남편과 같은 역할을
잠시 잊어보는 시도도 좋다.
동네 카페에 홀로 가서 다이어리를
적어본다거나 드라이브를 하며
멍한 시간을 보내는 경험들이
자신을 전과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다.
온전히 나 자신만으로 존재하는
기회를 갖는 일은 중요한 놀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