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졸혼하자.”
TV에서만 보던 ‘졸혼’을
현실로 접하고 보니 막막하다.
중년까지 함께 살며
지지고 볶고 정드는 게
부부 아니던가.
별거도 이혼도 아닌 졸혼,
정확한 개념도 모르는
중년 부부의 졸혼 상담은 늘어만 간다.
이혼 완충 단계? 별거의 다른 방법?
졸혼이 답인가?
이주은 부부상담의 이주은 원장은
졸혼 상담을 위해 상담실을 찾는
중년 부부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젊은 세대는 이혼을 하죠.
별거는 젊은 세대도 합니다.
졸혼은 중년의 이야기예요.
졸혼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명분 좋은 별거입니다.”
졸혼은 부부로서의 기능,
즉 결혼 관계는 유지하되
부부의 역할이 필요할 때만
부부로서의 역할을 하고,
그 외에는 각자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라는 게
이주은 원장의 설명이다.
얼마 전 50대 후반의 부부가
이주은 원장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먼저 제안하는
경우와 달리 이 부부는 남편이 먼저
졸혼을 제안했다고 한다.
남편의 졸혼 명분은
아내가 밉거나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자유롭고 싶고,
그런 자신이 더 이상 아내에게
통제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아내는 졸혼 얘기를 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지금껏 살아오며
집안일 다 혼자 하고
아이들도 혼자 키웠는데
아내가 아닌 식모냐는 불만,
자녀 모두 독립하고
이제 엄마이자 할머니로서
살고 싶은 꿈과 기대가 있었는데
일방적인 남편의 졸혼 선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아내는 변호사를 찾았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이혼 제안을 조언받았다.
당시 재산은 모두 남편 명의였고,
남편 쪽 변호사와 아내 쪽 변호사가 만나
재산은 5:5로 나눠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내에게 재산의 반을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남편은 졸혼 제안을 취소했다.
“사실 돈은 마음입니다.
졸혼 전 아내에게 재산이 없고,
재산을 나눠 주기 싫다는 것은
아내를 배우자로 본 게 아니라는 거죠.”
상담을 받다 보면
상황을 통찰하게 되며,
생각도 정리가 된다.
결국 부인도 초연해졌다.
생각해 보니 재산 나누고,
마음이 떠난 남편과 이혼해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졸혼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졸혼과 별거의 공통점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사이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상황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다른 이성이 생기는 거죠.”
다시 말해 자유롭고 싶다던
원래 이유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는 것.
이 원장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년 정도 되면
법규를 지키듯 하는 게 아니라
너무 경직되지 않게 서로의 삶을
인정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
따로 살다가 가끔 만나
반갑게 지내고 싶다는 게 이유라면
얼마든지 결혼 생활 속에서도 할 수 있다.
굳이 한 침대에서 잘 필요도 없다.
각자 편한 방에서 잘 수도 있고,
각자 자기 생활을 하다가
영화를 같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외도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이 원장은 외도가 배우자 아닌 사람과의
섹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는,
이성과의 사적인 일대일 만남부터
선을 그어야 한다고.
두 사람의 만남을
배우자에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은
넓은 의미에서 외도라고 볼 수 있다는 것.
“부부가 서로 합의가 되었다면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졸혼도 마찬가지죠.”
이주은
가톨릭대학교 상담학 석사
EBS <달라졌어요> 책임 전문가
현재 이주은 부부상담 대표 원장으로서
부부·가족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