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이 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도
서로 떨어져 살면서
각자 자기 삶을 즐기고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을 뜻하는 졸혼(卒婚).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반하는
이 낯설고 특별한 부부 형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졸혼, 바람직한 제도일까?
결혼과 이혼 사이
졸혼(卒婚).
‘결혼을 졸업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책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등장했다.
두 딸을 키우며 프리랜스 작가로 일하는
워킹맘이었던 저자는 40대 후반에
차분히 들여다본 자신의 결혼 생활을
이렇게 평했다.
“평탄하고 완만하며
햇살 가득한 길에서
느닷없이 함정에 빠진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기쁜 일도 궂은 일도 함께했던 남편이
불현듯 낯선 사람으로 느껴지고
대화도 자꾸 엇나가기만 했다고.
부부의 대화에는 야유와
빈정거림이 가득했고,
비난과 분노의 말들로
상처 주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 시점에서 딸은 엄마와 아빠가
잠시 헤어져 지낼 것을 권했다.
졸혼의 시발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는 주변의 중년 부부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함께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부부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각자의 자유로운 삶을 존중하는
커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상상 이상으로 행복하고 안정적인
그들의 관계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결혼 형태에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붙였다.
국내에서는 2016년 배우 백일섭 씨의
졸혼 고백을 시작으로 졸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졸혼은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 등의
소재로 꾸준히 등장했다.
2017년 5060세대 기혼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MBC에서 실시한 졸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91%가 졸혼이란 단어를 알았고,
48%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배우자와 떨어져 휴식 기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는 비율이 82%에 달했다.
여성이 더 우호적, 장점이 전부는 아냐
신기하게도 졸혼에 대한 중년층의
일반적인 반응은 남녀가 확연하게 다르다.
여성들은 나 홀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졸혼에 우호적인 반면,
남성들은 부부가 남남처럼 따로 사는
졸혼이 이혼과 다를 바 없다며 부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졸혼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황혼이혼율을 낮춰줄 대안이자
권태롭고 무미건조한 중년 결혼 생활에
활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졸’이 결혼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남편으로서 혹은 아내로서 짊어져온 부담과
책임에 대한 졸업이라는 것.
대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동등한 입장의
‘친구’,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동료’로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점이
결혼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부딪힘이 없어져 다툴 일이 줄고,
그리움이 생긴다.
이안수(63세), 강민지(58세) 부부는
올해로 졸혼 13년 차를 맞이했다.
남편 이안수 씨는 파주 헤이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고,
아내 강민지 씨는 서울에 마련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지낸다.
방송을 통해 소개된 이들 부부의 일상은
다정하고 애틋하다. 달달함이라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여느 중년 부부들과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남편 이안수 씨는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등
부부가 함께해야 하는 시간들을 충분히
살아낸 이후 어떻게 하면 각자 더
절실히 여기는, 더 선호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부부의 최종 결론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살아가자”
서로 떨어져 있으니 부딪힘이 없고,
부딪힘이 없으니 다툴 일이 줄고,
자주 만나지 못하니
애틋한 그리움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졸혼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와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일방적인 졸혼은 적당한 거리감은커녕
가족구성원 사이에 더 큰 거리감을 부른다.
혼자 하는 삶에 익숙해지면
함께하는 삶이 더없이 불편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졸혼을 위해서는
충분한 대화와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참고자료 :
<졸혼시대>
(스기야마 유미코 지음, 더퀘스트 펴냄)
<배우자에게 ‘졸혼’을 설득하는 법>
(이연정 지음, 인빅터스 펴냄)
MBC-FUJI TV 공동기획 <졸혼, 해도 될까요?>
<新 부부관계, 따로 또 같이>
OBS 로망다큐 가족+
<우리 이제 각자 행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