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인 우울한 세상,
하지만 그와중에도 감정의 동요를
잘 누르며 선전하고 있는 세대가 있습니다.
네, 바로 중년 세대이죠.
기승전중년.
집요한 메시지, 인정하십니까?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 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올라왔어요.
기사 제목은 이랬습니다.
“누가 펜데믹을 가장 감정적으로 대처하는가?
베이비 부머와 은퇴자들 “
많은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이
나이와 정비례하는 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펜데믹 상황을
‘감정적으로’ 잘 대처하고
평소의 생활을 이어가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가 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솔직히
자신의 삶에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한 은퇴자의
인터뷰가 증언하는 것처럼요.
한 보건 기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업무 책임감, 양육에 대한 압박 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는 코로나 이후,
정신 건강이 나빠지고
약물 사용도 늘고
심지어
자살 생각까지 하는 반면,
중년 이후 세대는
젊은 세대에 비해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 장애를
확실히 덜 체험한다고 하네요.
은퇴자들의 경우에는
직장을 잃을 염려도 없고,
방과 후 아이를 돌봐야 할 압박도 없으니
펜데믹 상황을 감정적으로
꽤나 잘 대응해나갑니다.
반면 젊은 세대는 (슬프지만)
‘탈모’로 고생하기도 한다고요.
특히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중년 이후 세대는
삶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지
그 어떤 세대보다
확실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펜데믹’이라는 사상 초유의
불확실한 위험 앞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걸 겁니다.
영국의 유명 페미니스트 작가
‘케이틀린 모란’은
젊은 사람들에게
‘중년’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면서
자신은 의도적으로
‘중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젊은 세대에게 계속 주입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중년이 되지 않을
방법이 딱 하나 있어.
그 전에 그냥 죽는 거지.
어때?
죽는 것보다는
중년이 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왜냐하면
중년이 되지 않기 위해선
딱 하나, 죽는 방법이 있는데,
죽는 것보다는
중년이 되는 것이
훨씬 더 낫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전례 없는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중년’의 짬밥은 역시
빛을 발하는 듯합니다.
중년 여러분은
여러분의 나이를 조금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또 ‘중년’이 되는 것이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젊은 세대를 붙잡고 설명할 필요도 있겠죠!
‘꼰대’ 소리는 부디 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