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아저씨로 사는 법을 고민하기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리고
나이에 맞게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며
수입차 한 대쯤 소유해야
성공한 남자의 인생이라고 여긴다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보려 한다면,
그런 삶의 자세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라면
그저 기분 탓일까?
인생을 사는 다른 공식을
영화 속에서 찾아본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늙는 것은 아니다.
인재 육성 전문가 야마구치 슈는
그의 저서에서 아저씨를 이렇게 정의한다.
‘오래된 가치관에 빠져
새로운 가치관을 거부하는 사람들,
낯선 사람과 이질적인 것에
배타적인 사람들’
그가 지적하는 아저씨는
단순히 연령이 아니라
낡은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의
특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즉 아저씨란 호기심을 잃고 겸허함도 잃고
새로운 것에 놀라며 계속 배우겠다는
자세마저 잃어버린 사람을 말한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고
계층 서열 의식이 강한 아저씨는
시쳇말로 꼰대에 가깝다.
아저씨가 빛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좋아질 수 없다고 진단하는 슈는
아저씨는 미의식과 지적 전투력을 높여
다시 도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쇠퇴한 아저씨가 아니라
‘진짜’ 아저씨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삶의 회복에는
험난한 과정이 뒤따른다.
너무 빨리 아저씨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 속에도 등장한다.
으레 그들은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벤 스틸러 주연의 2편의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와
<위 아 영>(2015)이 그렇다.
스틸러가 연기한 중년의 두 남자는
지나치게 성공한 삶에 집착한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지칭하며
끊임없이 고뇌에 시달린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브래드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며
나름 소신 있게 살아왔지만,
대학 동창생들의 성공에 심기가 불편하다.
친구들과 비교하며 내세울 게 없는
인생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된다.
그나마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재능 많은 아들 트로이다.
아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함께 보스턴으로 캠퍼스 투어를 온
브래드는 아들이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의 삶을 보상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혼란함에 사로잡힌 그는 결국
아들 면접을 도와준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들과 소박하게
클래식 콘서트를 즐긴다.
그 순간 브래드는 자신이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면 <위 아 영>의
다큐멘터리 감독 조쉬는
아내 코넬리아(나오미 왓츠)와
열정 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젊은 커플
제이미와 다비를 만나면서 삶이 바뀐다.
아이가 없는 삶에 만족하면서도
중년의 친구와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던
조쉬 부부는 LP를 듣고 비디오를 보고
타자기를 쓰는 제이미 커플과
같이 지내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는다.
조쉬는 제이미가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고, 젊은이와 어울리면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가능성에 눈을 뜬다.
하지만 제이미가 자신을 성공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8년째 같은 다큐멘터리에 매달리고,
여전히 다큐멘터리의 진정성과 윤리를
믿고 있는 조쉬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 “난 아직 살아 있다”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리는 브래드와
40대 중반에 입양을 결정하는 조쉬.
이들은 꽤 괜찮은 아버지와
스승이 되고 싶어한다.
이들이 성공이나 진정성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믿어온 신념이 깨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조급함과 번뇌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수정할
용기를 지님으로써 다른 방식의
삶으로 향하는 길잡이가 된다.
삶의 좌표를 바꾸기 위해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유지하는
관성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인 디 에어>(2009)의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미국 전역을 돌며 1년에 320일 이상
파견 근무를 다니는 삶을 산다.
오로지 여행에 최적화된 삶을 사는
그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공중”이라고 답할 정도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마일리지를 위한 것이다.
마일리지가 쌓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며,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에서 7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
백팩의 무게를 삶의 무게에
비유하는 강의를 하지만,
정작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격리시키고 고독한 일상을 살아간다.
여동생의 결혼식,
그는 자신의 인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로움을 모른다고 주장하던 라이언은
자신이 텅 빈 백팩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변화를 시도하지만 그의 희망은
보기 좋게 배신당한다.
늘 현실의 도피처에 만족하던 그에게
사랑의 결실은 쉽게 맺어지지 않는다.
결국 다시 공항으로 가고,
많은 이들이 집으로 복귀하는 동안
그는 다시 하늘을 난다.
유목민의 삶을 사는
빙햄이 탈출구를 갈망하는 동안
비슷한 외톨이 신세지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누리는 행운아도 있다.
사실 인생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빈센트(빌 머레이)는 단순히 오늘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다.
<세인트 빈센트>(2014)에서
고집불통 외골수이자 경제난에 시달리던
노년의 빈센트는 우연히 옆집에 이사 온
소년 올리버(제이든 리버허)의 보모가 된다.
빈센트는
올리버가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와 맞서 싸우게 하고,
경마장에서 배팅을 가르쳐 주거나
술집에 데려가는 등 다소 탈선적인
방법으로 올리버를 성장시킨다.
하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던 빈센트는
뇌졸중이 찾아오면서
오히려 올리버에게
도움을 받는 신세가 된다.
올리버는 빈센트를 성인이라
생각할 정도로 따르고,
올리버의 애인 다카가
딸을 출산하면서
이웃과 함께 가족을 이룬다.
삐딱한 빈센트는
외톨이 신세에서 벗어나고,
그렇게 괴팍한 노인에게도
봄날은 찾아온다.
오히려 빈센트는 올리버를 통해
잃어버렸던 인생을 되찾는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벤 스틸러, 조지 클루니, 빌 머레이의
아름다운 주름을 본다.
그 주름 속에는 그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인생의 많은 경험과 의미들이 담겨 있다.
그들은 잠시 도망치거나 넘어지거나
패배하지만 결코 겁쟁이가 아니다.
겸허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용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사랑하는 자세로부터 나온다.
빛나는 그들, 진짜 아저씨들과 함께
아직 인생을 배워야 한다.
전종혁
영화평론가
대한항공 매거진 <비욘드> 편집장
영화 전문지 <프리미어> 기자 출신으로,
영화진흥위원회 매거진 <한국영화>에서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